고전시

端宗御製 (단종어제) 子規樓詩 (자규루시)

세태풍자 2007. 12. 1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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端宗御製 (단종어제) 子規樓詩 (자규루시)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窮恨年年恨不窮 (궁한연년한불궁)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何乃愁人耳獨聽 (하내수인이독청)


단종어제 자규루시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 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소리 끊긴 새벽 묏부리에 달빛만 희고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슬픈 하소연 어이 못 듣고
어찌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듣는가


이 시는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 귀양 가 있을 때
영월 영흥리에 있는 자규루(子規樓)에 올라 지은 시다. 나는 이 시를
단종의 최초 유배지로 알려진 영월 청령포(淸령浦 - 령자는 3수변에
令자임)의 관광 안내간판에서 구했다.

 

이 시에서 단종은 스스로를 궁에서 쫓겨난 한 마리의 새, 이 산 저 산
푸른 산 속을 옮겨 다니며 밤새도록 울어대는 소쩍새로 생각한 것이다.
밤이 와도 잠은 안 오고 해가 가도 한이 끝이 없다는 그 애틋한 심경,
어린 열 두 살 나이에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마지막 두 구절은 정말 심금을 울린다. 그렇게 만사에 능하다고 믿어
온 하늘이 이 애틋한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마 귀머거리가
아닌가? 그런데 왜 근심 많은 자기 귀에만 이 한 맺힌 소리가 들리는가?

청령포 단종 유배지는 영월의 서강물이 서, 북, 동쪽으로 회돌이 치고
남쪽은 험한 절벽으로 된 국지산 줄기가 가로막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다. 유배지 유적들을 복원 해놓았고, 단종이 걸터앉아 울부짖거나 시름
을 달랬다는 소나무는 지금 낙낙장송이 되어 그 끝을 볼 수 없도록 자랐
는데 사람들은 관음송(觀音松)이라 이름을 붙이고 천연기념물 제349호
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관음송이란 이름은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觀), 울부짖는 소리
(音)를 들으며 자란 소나무(松)' 란 뜻이다.

청령포 유배지를 건너다보는 서강 북안 솔밭에는 세조 3년에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로 귀양 갈 때 의금부 금부도사
로서 호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괴로운 심경을 읊은 왕방연(王邦衍)의 시
조 한 수가 새겨진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시내 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마음)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간)다.


단종어제 자규시와 자규루에 나오는 '자규(子規)'는 소쩍새를 말하는데
중국 촉나라 황제 망제(望帝: 杜宇)가 전쟁에서 패하고 죽어서 그 혼이
새가 되어 이 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새다.

그래서 한이 맺혀 이 산 저 산 다니면서 가슴에 피가 나도록 밤새 운다
고 한다. 소쩍새 울음소리는 한 밤이 지새도록 울어 그 애틋한 울음소리
는 듣는 사람에게 시적 감흥을 일으켜 예부터 많은 시의 구절에 올라왔다.

사람들은 소쩍새를 자규(子規) 외에도 두견(杜鵑), 망제혼(望帝魂), 귀
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 접동새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러왔다.

촉나라의 황제 망제 두우가 죽어서 그 혼이 새가 되었다 하여 망제혼
또는 두견, 그 울음소리가 중국사람들에게는 마치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
다'는 것으로 들려서 귀촉도, 그러나 돌아갈 수 없다고 불여귀, 가난했던
사람들에게는 '풍년이 올 터이니 솟이 적다'고 알려 준다 하여 소쩍새라
하였다 한다. (접동새의 어원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천지가 고요하게 잠든 여름밤 홀로 한 맺힌 울음으로 뭔가를 온 세상에
하소연하는 소쩍새 울음소리와 어린 단종의 한 맺힌 시 한 수가 그 뭔가
공명을 일으키며 가슴에 와 닿는다.

두견새가 이 산 저 산 가릴 데 없이 울고 다니는 것처럼 봄에 이 산 저
산 가릴 것 없이 온 산에 널려 피는 진달래꽃을 사람들은 두견화(杜鵑花)
라고도 부른다.

 

이 꽃 닢의 색깔이 두견새가 피를 토하며 우는 것 같이 붉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두견새가 이 산 저 산 다니며 울면서 흘린 눈물이 씨앗
이 되어 돋아나 이 꽃이 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두견새와 두견화는 매우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돌아오는 봄날에 산에 올라 두견화 꽃(진달래꽃)을 보거든 두견새(소쩍새)
생각하고, 두견새 울거든 단종의 애 끊는 하소연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규루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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