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광주사태 기간 중의 북한의 동향

세태풍자 2006. 9. 1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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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에 일어난 광주 시위사태가 점차 확대되어 전라남도 16개 시, 군도 치안부재의 무정부상태가 되는 혼란이 일어나자, 북한은 심상치 않은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김일성은 전국비상계엄이 확대 선포된 5월 17일 심야와 광주 시위사태가 일어난 5월 18일에 연이어 군․정․기관 고위간부회의(軍․政․機關 高位幹部會議)를 개최하여 한국의 국내정세를 검토하고 통일에 대비하라고 지시하였다.

북한 인민군은 5월 18일에 전군 연대장급 이상 전원 간부회의(全員 幹部會議)를 소집하고 한국의 정세를 평가한 후에 유사시 군사행동을 감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5월 19일에는 북한 전역에 걸쳐 군수물자 동원검열을 실시하는 등 전쟁준비계획을 총 점검하였다.

5월 20일에는 중국을 방문 중이던 군사대표단장 백학림 중장이 북한은 통일을 위하여 전쟁준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공언하였다. 5월 21일에는 긴장된 국내외 정세를 이유로 군인의 외출과 출장을 일체 금지시키는 한편 출장 중인 군인과 당원을 5월 27일까지 귀대하도록 지시하였다.

북한은 또한 5월 20일에 통혁당과 19개 사회단체 연합 성명을, 그리고 5월21일에는 통혁당 전라남도 위원장 명의의 담화문을 통하여 광주시위사태를 “민주화를 위한 성전” “평화적 통일을 위한 애국투쟁” 이라고 고무하면서 노동자, 청년 학생, 지성인과 계엄군 장병은 영웅적 투쟁에 합류하라고 선동하였다.

5월 21일에 평양에서 대규모 군중대회를 연 것을 기점으로 “광주 반정부투쟁” 을 지지 성원하는 군중대회를 북한 전역으로 확대하였다. (안전기획부 작성 “광주사태 관련 기본자료” )

광주사태 당시 우리나라와 미국 정보기관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북한은 9개조의 비정규전 부대를 후방에 투입함과 동시에 남침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고 광주사태가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1988.6 안전기획부 작성 “광주사태 관련 기본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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