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壯士 詩 삼장사 시
金誠一 김성일
矗石樓中三壯士 촉석루중삼장사
一杯笑指長江水 일배소지장강수
長江之水流滔滔 장강지수류도도
波不渴兮魂不死 파불갈혜혼불사
촉석루 마루 위에 마주보는 세 장사
한 잔 술로 웃으면서 장강을 가리키네
장강의 저 물은 도도히 흘러가는데
강물이 안 마르듯 우리의 넋도 없어지지 아니하리
김성일[金誠一] 1538(중종 33)~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 아버지는 진(璡)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했으며, 1568년(선조 1)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검열·대교 등을 거쳤다.
그 뒤 부수찬·정언 등을 지내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1577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가서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위해 노력했다. 그뒤 함경도순무어사·사간·황해도순무어사를 지냈으며, 나주목사로 있을 때는 대곡서원(大谷書院)을 세워 김굉필·조광조·이황 등을 제향했다.
1590년 통신부사(通信副使)가 되어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실정을 살피고 이듬해 돌아왔다. 이때 서인인 황윤길은 "왜적이 반드시 침입할 것입니다"(必有兵禍)라고 했고, 동인인 그는 일본의 침략 우려를 탐지했으나 민심 동요를 우려하여 "신은 그들이 반드시 쳐들어오리라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臣則不見其必來)라고 보고하여 당시의 동인정권은 그의 견해를 채택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잘못 보고한 책임으로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동인인 유성룡의 변호로 경상우도초유사에 임명되었다. 그뒤 경상우도관찰사 겸 순찰사를 역임하다 진주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적으로 이황의 주리론(主理論)을 계승하여 영남학파의 중추 구실을 했으며, 예학(禮學)에도 밝았다. 저서에 〈상례고증 喪禮考證〉·〈해사록 海錄〉·〈학봉집〉이 있으며, 이황의 〈자성록 自省錄〉·〈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안동 호계서원(虎溪書院) 등 여러 곳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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