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정말 '走肖爲王' 나뭇잎 때문에 죽었을까 [김민철의 꽃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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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가을 서울 교보빌딩 광화문글판엔 ‘나뭇잎이/벌레 먹어서 예쁘다/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별처럼 아름답다’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생진의 시 ‘벌레 먹은 나뭇잎’에서 따온 문구였습니다. 그런데 벌레가 나뭇잎에 글씨까지 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젊은 개혁정치가 조광조(趙光祖·1482~1520)는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발단이 벌레가 나뭇잎에 쓴 글씨 때문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동안 알려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519년 중종은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파자(破字)가 쓰인 나뭇잎을 받습니다. 주(走)와 초(肖)를 합치면 조(趙)가 됩니다. 그래서 당시 ‘주초위왕’은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훈구파들이 조광조를 모함하기위해 꿀물로 나뭇잎에 글자를 적어 벌레가 갉아먹게 했다고 합니다. 분노한 중종은 조광조를 능주(전남 화순)로 유배 보낸 다음 사약을 내립니다.
이 내용은 무려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더욱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벌레가 글씨를 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인하대 민경진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주초위왕 사건이 역사적 사실인지 확인하는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2015년 5~7월 두 달간 2주 간격으로 관악산 일대를 찾아 나뭇잎에 꿀물로 임금 ‘왕(王)’자를 써두고 곤충이 먹는지 여부를 조사한 것입니다.
실험을 위해 나뭇잎에 꿀물로 임금 '王'자를 쓴 모습. /민 교수팀 논문
기록에는 어느 벌레가 어느 나뭇잎을 갉아 먹었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궁 안에 있는 ‘나뭇잎에 감즙(甘汁)으로’ 글자를 새겨 벌레가 갉아먹게 했다고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 교수팀의 실험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꿀물을 묻힌 붓으로 ‘走肖爲王’이라고 쓸만한 나뭇잎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위(爲)’는 12획이라 그 모양이 복잡해서 한 나뭇잎에 쓰기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할 수 없이 ‘王’자만 쓰고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관악산에서 40종의 나뭇잎에 ‘王’ 자를 쓸 수 있었다고 논문(‘Validation of 走肖爲王: Can insects write letters on leaves?’, 곤충학연구 48)은 밝히고 있습니다. 실험 대상인 나뭇잎은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 4종, 때죽나무, 물푸레나무, 팥배나무, 개암나무, 국수나무, 청가시덩굴 등 20종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곤충이 갉아먹어 ‘王’자가 만들어졌느냐 여부겠지요? 민 교수팀은 어떤 나뭇잎에서도 ‘王’자가 새겨진 경우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벌레들이 나뭇잎 자체를 먹지 꿀물은 입도 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곤충과 나뭇잎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쪽동백나무 잎들이 원통 모양으로 돌돌 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해놓았을까요? 이 돌돌 말린 나뭇잎을 펼쳐보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나뭇잎을 갈아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방 애벌레가 사는 것인데, 장미색들명나방 애벌레라고 합니다.
돌돌 말린 쪽동백나무 잎. 나뭇잎을 펼쳐보면 장미색들명나방 애벌레가 있다.
여름에 참나무 아래엔 참나무 가지들이 수북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 가지치기를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 일로 보기에는 너무 방대한 규모입니다. 가지 끝은 톱질한 듯 반듯하게 잘려 있습니다. 범인은 도토리거위벌레입니다. 이 벌레는 7월 말부터 도토리 달린 참나무 가지를 떨어뜨리기 시작해 8월이면 땅바닥을 참나무 잎 천지로 만든답니다. 주둥이가 길쭉한 것이 거위를 닮았다고 해서 도토리거위벌레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처럼 곤충과 나무들이 숲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주초위왕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중종이 조광조를 신임해 그의 과감한 개혁 정책을 밀어주다가 그의 힘이 점점 커지자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거한 것이지 글자가 쓰인 나뭇잎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관련 기록도 중종 때가 아니라 한참 후인 선조 때 등장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라는 책은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라며 “기록을 면밀히 살피고 올바른 해석을 해내야 그 시대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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