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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예비군

세태풍자 2016. 4. 4.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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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예비군

북한은 1962년 이래 대남 무력 적화 준비를 강행하는 한편, 남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도발을 하였다. 마침내는 1968년 1월 21일 31명의 무장 부대를 남파하여 청와대 습격을 시도하였고, 2일 후인 1월 23일에는 미 해군의 푸에블로 호를 나포하였다. 그런데 북한 무장 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과 푸에블로 호 나포 사건의 처리 방안을 둘러싸고 한 · 미간에 이견이 있었다. 즉, 미국은 푸에블로 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조처를 취한 반면에 북한 무장 부대 침투 사건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편, 한국 정부의 입장은 1·21 사건에 대하여 어떤 군사적 보복이나 응징을 취하지 않으면 이것이 선례가 되어 무장 부대의 남파가 계속될 것이고, 무장 부대의 남파에 수동적으로만 대처한다면 전략·전술상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므로 강경한 제재 방법에 의하여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를 바랐다. 정부는 ① 종래의 유엔 중심의 국방 태세에서 자주적 국방 태세로의 전환, ② 향군 250만 명의 무장화, ③ 무기 생산 공장의 연내 건설 등 자주국방의 필요성과 결의를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의에 따라 정부는 1968년 3월 '향토 예비군 설치법 시행령' 을 제정, 공포하였고 1968년 4월 1일 향토 예비군을 창설하였다.


향토예비군 노래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직장마다 피가 끊는 드높은 사기

총을 들고 건설하며 보람에 산다

우리는 대한의 향토예비군

나오라 붉은무리 침략자들아

예비군 가는 길에 승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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