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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풍수로 왕릉 읽기

세태풍자 2006. 7. 1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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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왕릉 읽기

 

우리는 조선시대 궁궐과 왕릉이라는 자랑스러운 문화재를 갖고 있다. 비록 훼손이 많이 되긴 했지만, 근대시기-일제시기-해방 후 6·25를 거치면서도 이렇게나마 보존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오히려 일제강점기의 궁궐의 훼손 못지않게 가장 크게 상처를 입힌 것은 바로 1960년대 이후 우리 손에 의해서였다. 당시에는 재정이 열악하여 문화재와 관련된 땅을 팔아서 직원들 봉급을 주기도 했고, 군사정권의 실세들은 포상을 목적으로 문화재가 들어선 땅들을 멋대로 처분했다. 예를 들어 가장 훼손이 심한 서삼릉은 능 주변이 온통 잘려나가서 지금 존재하는 능역은 오히려 사유지에 포위되어 조각난 채 존재하고 있다.

 

궁궐이 왕의 삶의 공간이라면 왕릉은 왕의 죽음의 공간이다. 궁궐과 왕릉의 입지는 전부 전통적인 풍수사상이 반영되었다. 따라서 궁궐과 왕릉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풍수적 독해가 필요한 것이다.

 

 

 

 

왕릉, 입자粒子가 아닌 전체로 이해하기


왕릉은 여러 측면에서 문화적 감상이 가능하다. 조선시대 왕릉의 배치는 주변지형을 고려하여 한국의 전통적인 왕릉 배치형식과 공간의식에 따라 조영되었다. 그것은 크게 속세의 공간인 진입공간(재실, 연못, 화소, 금천교), 성聖과 속俗의 공간인 제향공간(홍살문, 정자각, 수복방, 수라방, 참도, 판위 등), 성의 공간인 능침공간(비각, 산신석, 예감, 소전대, 능침)으로 나눌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왕릉의 문화적 요소를 구분하면, 건물 등의 건축적 요소와 석물 등의 미술적 요소, 왕릉에 있는 식물과 동물 등의 생태적 조경적 요소, 어가 행렬과 제향 등의 의례적 요소, 봉분 및 주변 자연지형에 반영된 풍수적 요소 등을 들 수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구분하든지 왕릉은 총체적인 감상이 필요하다.

 

사실상 그동안 왕릉은 여러 제한이 많아서 전체적인 감상이 어려웠다. 무엇보다 봉분을 중심으로 하는 능침공간은 출입이 제한되었다. 어떠한 문화재라도 바로 앞 구성요소가 가장 중요한데, 왕릉의 경우에는 봉분 앞에 가지 못한 채 먼발치에서 봉분 및 석물들을 바라보아야 했다. 또한, 문화재가 놓여 있는 위치에 서서 바로 전면에 펼쳐지는 경관을 조망해야 하는 법인데, 이것도 어려웠다. 그리고 왕릉에 반영된 풍수적 요소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봉분 주위 산세를 걸어 보아야 하는데, 이것도 출입이 제한되었었다. 왕릉에 가해지는 여러 제한은 물론 왕릉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제한은 왕릉을 자칫 소풍가는 공간으로 밖에는 인식시키지 못할 것이다.

 

최근에 와서 문화재청은 가능한 관람구역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적절한 관리방안을 마련한 뒤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점이 관철되어야 한다. 하나는 직접 봉분과 석물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왕릉 산세를 둘러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왕릉은 풍수사상에 입각한 지형지세를 함께 감상할 수 있어야 단순히 봉분 중심의 입자가 아닌, 봉분을 둘러싼 전체상으로 왕릉을 이해하는 것이 된다.  

 

 

조선왕릉에 담긴 풍수적 요소


현재 문화재청은 조선왕릉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유네스코에 이미 등재된 베트남 후에의 황실 무덤(1993년), 중국의 명 13릉 황제무덤(2000년)과 비교하여 조선왕릉의 가치는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아니면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 없이 왕릉 자체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왕릉에 반영된 풍수적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

 

왕릉에 반영된 전통 풍수사상은 크게 사신사四神砂로 요약된다. 사신사는 왕릉을 사방에서 보호해 주는 산으로, 뒷산인 현무玄武(혹은 主山), 앞산인 주작朱雀(혹은 案山), 왼쪽 옆 산인 청룡靑龍, 오른쪽 옆 산인 백호白虎를 말한다. 문화재는 아무 곳에나 놓인 것이 아니라 주변 자연환경을 배려한 뒤 바로 그곳에 놓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재를 본래 자리가 아니라 박물관에 가져다 놓으면 그 문화재는 단순한 입자가 되어 왜소해진다. 그래서 박물관을 명작들의 공동묘지라고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왕릉은 주변 자연환경을 가장 중요시하여 전통 풍수사상에 입각한 사신사의 조건을 최우선으로 했다.

 

조선시대 왕릉은 조성 당시에도 항상 많은 풍수적 논쟁이 있었다. 그러한 논쟁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어느 학문, 어느 정책이라도 항상 결론에서 의견은 분분한 법이다. 풍수전문가들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전문가들처럼 처방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풍수논쟁은 현재의 왕릉콘텐츠를 풍요롭게 한다는 점이다. 왕릉에 가서 풍수적 요소를 보고, 풍수관련 일화를 실제 확인해 보아야 왕릉답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뒷산 주산의 맥은 어디에서 왔으며 얼마나 강하게 왕릉 주인공이 묻힌 봉분으로 들어오고 있는지, 앞산인 안산은 봉분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옆 산 청룡과 백호는 역시 봉분을 어떻게 감아 안으면서 유정하게 보호해 주고 있는지를 감상해야 한다. 그러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왕릉풍수와 관련된 여러 일화를 대입하면, 왕릉답사는 대단히 풍요로워진다.

 

이처럼 풍수로 왕릉을 읽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 먼저 문화유산해설사 교육에 반드시 풍수강좌가 설강되어 해설사부터 왕릉풍수를 알게 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왕릉 앞에 있는 게시판 그림을 실제 풍수의 사신사 요소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그려 주어야 한다. 또한, 왕릉 설명서에 풍수의 사신사를 표시해 줌으로써 관심 있는 사람들이 확인하고 답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왕릉, 입자가 아닌 전체로 보존하기


현재 문화재 주변 건축물 신축은 항상 개발과 보존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 중 왕릉 주변이 가장 심한 상태이다. 이 점에서 왕릉은 왕릉을 둘러싼 사신사의 범주까지가 보존되어야 한다. 몇 년 전 동구릉 바로 앞 안산 위치에 세워진 골프장 소송에서, 동구릉 보호를 위해 골프장을 철거하라는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졌는데, 그 근거가 된 것이 바로 동구릉의 사신사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융건릉 봉분에서 보면 안산 너머에 있는 조산朝山이 크게 훼손되어 있다. 앞으로 왕릉 주변 건물신축 문제에서 사신사의 개념을 도입하여 보존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최근 그 첫 조치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하여 융건릉 앞의 안산 지역을 융건릉의 구성요소로 보고, 안산지역의 개발을 제한하는 현상변경안을 적용시켰다. 항상 왕릉은 입자가 아닌 전체로 이해해야 하지만, 역시 보존에서도 입자가 아닌 전체로 보존될 필요가 있다.

 

 

글 : 김기덕 _ 건국대 교수, 문화재청 사적분과 전문위원 

출처 : 문화재청
글쓴이 : 문화재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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