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 25 동란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6. 25전 38선에선 크고 작은 국지전이 수 없이 벌어졌다. 여러 차례의 남침정보에 의하여 비상경계령이 내려졌으나 6. 23. 비상이 돌연 해제되고 6. 24. 토요일 모내기 등 농번기를 맞아 전방의 3분의 1병력이 외출, 외박, 휴가를 떠났으며 무슨 이유에서 인지 군 지휘관들의 인사이동도 단행했다. 이때 군 참모총장은 채병덕이 었다.
마침 육군회관 건립 기념식에 군 수뇌부들이 모여 축하하고 이어 2차로 국일관에서 새벽 2시가 넘도록 술을 퍼마시고 골아 떨어졌다. 술값은 연합신문 주필 정국은이 지불했다. 북괴 인민군이 전면남침 사실도 까맣게 모른 채,
한편 이승만 대통령은 6. 25. 아침 9시경 비원 연못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비서관이 달려와 북괴의 전면남침 사실을 알린다. 이때는 미군이 전부 철수하고 미 군사고문단 500여명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즉시 무초 미 대사에게 연락하고 일본의 맥아더에게 전화를 하니 부관이 받아 “지금 낮잠을 자고 있으니 이따가 하라”고 하자 “지금 미 군사고문단이 다 죽는단 말이야”라며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인민군은 의정부를 지나 창동을 거쳐 미아리 고개를 넘고 있었다. 다급해진 비서관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납치하다시피 차에 태워 서울역에 대기하고 있는 열차로 피난길에 올랐다. 대통령은 “내가 가면 어디로 가냐”며 피난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열차가 대전쯤에 이르자 “여기가 어디냐”며 차를 돌리라고 했다.(6. 25동란과 남한좌익)
좌파교수 전교조 애들은 교단에서 이승만을 국민 버린 도망자라고 학생들 한데 끊임없이 주입시키고 있다. 남침 3일 만에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되었는데 그럼 대통령이 포로가 되란 말인가.
한편 군 수뇌부들을 2차 국일관으로 유인하여 새벽까지 술을 퍼마시게 한 연합신문 주필 정국은은 친일 공산주의자이며 박헌영과 연계된 남로당원 이었으며 휴전협정 후 간첩 혐의로 채포되어 홍재천 변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고 하나 미스터리다. 정국은 대신 보도연맹원 박철우가 사형 당하였으며 당시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붉은전쟁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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